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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남사당패

삼이사핥핥
2014. 7. 16. 10:12

청이 남사당패에 들어간것은 겨우 여덟살 남짓한 나이였으나, 제 또래보다 훨씬 체격이 작은 탓에 겉보기로는 그저 다서,여섯이나 되었거니 싶은 몸을 지니고 있었다. 얇다 못해 빼빼 마른 몸을 발발대며 온갖 신부름을 도맡아 하다가도 청은 저보다 한두살이나 어린 도령이 비단 옷을 차려입고 서당에 가는것을 볼때면 으레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그를 흘기기도 했다. 허나 한눈을 팔면 돌아오는 것은 당장에 뼈를 후려치는 매타작이었으므로 청은 번번히 제 양 뺨을 잡고 그들을 외면하는 것이 일이었다. 연속되는 흉년에 이틀에 한번꼴로 받는 주먹밥으로 겨우 연명해가면서도 삐쩍 말라가는 몸과 달리 키는 멀대처럼 쑥쑥 커져만 갔다. 그의 수동모는 남사당의 꼭두쇠였는데, 그는 청이 열넷이나 되어 키가 육척에 조금 못미치자 그제서야 장구를 치는법이나, 공중제비따위를 가르쳐주었다. 광대놀음에 본격적으로 끼기시작할 즈음에, 꼭두쇠는 거나하게 취한 몸을 비틀거리며 청에게 손짓했다.

 

아야. 청아.

예.

너도 이제 곧 성인이지 않느냐. 더 이상 어린아이도 아니니, 먹여주고 키워준 밥값을 너도 해야지.


청은 정좌로 꿇고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예.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겄으요.


각시탈을 쓰고서 말기치마를 허리께에 단단히 감아매고 치맛자락을 번번히 들추는것이야 광대놀음에서는 퍽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치마를 들추는것이 한 낮뿐이 아니란것과는 다른얘기였다. 그래도 청은 알겠다고 했다.

그날 밤에 찢어진 살갗 사이로 흐른 피가 속곳은 물론이고 양반네의 귀한 보료에까지 흠뻑 적시고도 남아 청은 제대로 앉는것마저 고통스러워했지만 꼭두쇠는 모른척 청을 연신 침소로 밀어넣었다.


생계를 위함이니 이해하거라. 네가 해우채[解衣債]라도 받아와야 나머지가 먹고 살것 아니냐. 그동안의 은혜가 있지.


꼭두쇠의 뒤에 있는 소품용 낫이 촛불에 덜렁거리며 번뜩번뜩 청의 시야 안을 찔러댔다. 그 시간에 익숙해지는 것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뭐든 빨리 적응해버리는 그의 성격탓인지, 혹은 허울뿐인 가족의 틀 안에 안주하고자 하는 욕심때문이었는지, 청은 꼭두쇠가 줄을 타다 떨어져 비틀린 목으로 장사를 지내게 된 후에도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다른 광대들 역시 당연시 했고, 그의 수동모를 담당하게 된 새로운 가열 역시 그랬다. 청은 침소에 들때면 다소곳하게 꿇어앉아 각시탈을 쓴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문이 열렸다 닫히며 비단소매가 부드럽게 스치고 옆에 앉았고, 다가올 손길에 청은 한껏 몸에 힘을 주고 있었으나 청을 건드리는 것은 종잇장이 펄럭펄럭 넘어가며 일으키는 바람뿐이었다. 탈 너머로 눈을 슬쩍 뜨고 흘겨보자 겨우, 열 일곱이나 되었을법한 젊은 선비가 매우 시큰둥한 얼굴로 서책을 넘기는것이 아닌가. 청이 몰래 훔쳐보는것을 알기라도 했는지,


편하기 앉지 그러오?


목소리는 어찌나 다과마냥 달콤한지, 떨궈져 나온 조각을 끼워 맞춘 것처럼 밤에 꼭 맞는 목소리였다. 청이 화들짝 놀라 어깨를 움찔이자 그는 잠시 멈추었던 책장을 다시 팔랑팔랑 넘기기 시작했다.


하도 잘 봐달라 사정사정하니 들이긴 했소만 비역질엔 내 동하지 않으니 대충 자고 새벽에 가시오. 식구들은 술상 거하게 차려드렸으니.

....


비역을 출(出)하였을때 삐리는 소리를 내지 않는것이라 배웠으므로 청은 속으로만 이유를 물었다. 이미 자성쪽으로 돌아간 탈의 눈 안으로 노란 눈이 끔벅거리거나 말거나 자성은 서책을 마저 훑어내리고 도포를 풀어 속곳만 입은채로, 


편하게 앉으라니까. 난 그만 자야겠으니 불 좀 꺼주겠소? 그리고 그 탈 좀 벗으시오. 없던 귀신도 나오겠네 그래.


그러더니 정말 청에게서 휙 돌아 누워버리는 것을 보며 청은 어찌할 바를 몰라 초를 쳐다봤다가, 자성의 등을 쳐다보며 난감해했다. 한식경(약 30분)이 지난 후에야 창호지 밖으로 새어나오던 불빛이 가느다란 연기와 함께 공기중으로 흩어지고, 청은 탈을 옆에다 조심히 내려놓은채 새벽별이 기울때까지 자성의 등을 내내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뒤로도 이틀이나 더 청은 자성의 침소에 들어야 했다. 자성의 말과 달리 새로운 꼭두쇠는 청의 어깨를 토닥이며 


이번에 아주 나리의 마음을 꽉 잡았나보다. 응? 잘했어. 잘했다. 앞으로도 이렇게만 해. 그리고 오늘은 탈 쓰지 말고 오시라더구나.


하며 웃었다. 탈을 쓰지 않고 덜렁 계집의 옷만 입고 들어가자니 그것만큼 또 부끄러운 일이 없었다. 세 식경이 멀다하고 입는것이 계집옷이라 사내옷보다 더 익숙함에도 어쩐지 그랬다. 문을 열고서 청은 주춤거렸는데, 방 안 가득 어질러지다시피 널려진 종이 위로 그려진, 길게 쭉 쭉 뻗은 난초가 방 안 한가득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자성은 멋쩍은 듯 종이를 한장한장 거두기 시작했고 얼결에 청도 그것을 도왔다.


..오늘은 왜 이리 일찍 왔소? 것보다 난 그쪽이 벙어린줄 알았는데 말요.


청은 고개를 살짝 떨구며 웃었다.


...글쎄요오. 다덜 즈가 말 하는것을 그닥 안좋아허셔서요. 나넌 기냥 박히기만 허믄 되니께.


그 적나라한 말에 자성의 흰 얼굴이 화르륵 불타오르자 청은 의아하게 쳐다보다 제가 더욱 붉어져 손을 내저었다.


아니, 아녀요. 고것이 아니라 그니께...


청으로서는 실로 오랜만에 해본 말이었다. 일생의 대부분을 같이 보낸 이들보다 더 많고, 다양한 말을 한지라 청은 어느덧 축시(새벽1~3시)를 훨씬 넘긴것도 잊은채, 그 짧은 마지막 밤을 담소로 보냈다. 인시(새벽 3~5시)를 넘겨 하늘이 밝아오는 것이 못내 아쉬운것은 비단 청 뿐만이 아니었는지 자성은 때때로 문 밖으로 시선을 주며 작게 한숨쉬었다.


첫날 결국 잠을 안 주무셨든디요.

알고있었소?

거 둘째날 보니께 알겄드만요.

청, 당신이 내 옆에 와서 자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말요.

나리넌 농담도 잘허시요.

나리라 하지 말래도.

암만 그려도 나가 거 소 말보다 못헌 천민인디 으째 양반님헌티 하대를 헌답니까.

그 치마하고 괴상한 탈만 안쓰면 다들 그런줄도 모른다 하지 않았소.

암만 그려도...


청의 지칠줄 모르는 대꾸에 자성의 처진 눈꼬리가 더욱 내려앉았다.

두손 두발 다 든것은 청이 먼저였고, 자성은 청이 방을 나서기 전에 작은 장신구를 몇가지 손에 쥐어주었다. 동시에 섞여들어간 숨결이 서로의 마음에 홧홧하게 불을 지피고, 아직 찬 새볔이슬에 적셔든 마음은 불꽃만 남겨둔채로 안녕을 고했다. 넓은 조선팔도, 같은 하늘 아래만 있다면 언제든 닿지 않겠냐는 기약없는 약조에도 알겠다고, 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


자성은 유랑단이 찾아오는 날이면 관중무리에 끼어 행여나 그가 있지 않을까 마음을 졸였다. 각시광대를 볼때마다 곰뱅이쇠를 불러다 번번히 이름을 물어보았으나 자성이 찾는 이름은 아니었다. 그렇게 오년이 더 흐를동안 자성은 늦은 혼인을 올렸고, 아이도 둘이나 생겼다. 원해서 한 혼인도 아니었으니 둘째에 아들을 낳고서 부부관계는 당연히도 소원해졌다. 청을 찾다못해 기생집에 들락거리는 날이 집에 들어가는 날보다 많아지며 자성은 횡행하였다. 기생집을 하도 들락이다보니 또한 술친구라 할 수 있는 자 역시 생겼는데, 전주 이씨로 본관은 같았으나 자성은 순평군파의 46대손이고, 그는 화의군파의 48대손으로 본인을 이중구라 소개했다. 엄밀히 보자면야 자성이 그의 대부가 되었으나 권세로 보자면 중구가 압도적으로 우위라고 할 수 있었다. 허나 그는 뭘 그런걸 따지나. 친우 사이에. 하고 술잔을 들었고 자성 역시 술잔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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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청. 검은머리 짐승은 함부로 거두는 것이 아니다.

삼이사핥핥
2014. 6. 13. 11:49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뭉뚱그려진 시야에 반짝이는 디지털 시계는 겨우 세시 이분임을 알리고 있었고 옆집은 또 발작처럼 시끄러웠다. 벌써 한두번도 아니었다. 새로 들어서는 오피스텔의 입주가 미뤄져 임시로 마련한 이 빌라는 잊을만하면 이처럼 온 동네를 들썩여놓곤 했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하며 무언가가 벽에 부딪혀 부숴지는 소리, 그리고 나이가 지긋함이 분명할 남자의 고함소리다. 남자 혼자 그러는 것이 아니다. 남자는 누군가에게 화를 내고 있었고 제 분에 못이겨 대답 안해, 대답 안해! 소리치기도 했다. 맞는 사람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이미 그 사람이 기절했거나, 혹은 벙어리거나, 혹은 죽었거나. 셋중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일주일에 한번꼴로 저러는 것을 보아 아직까지 죽지는 않은 듯도 싶었다. 


하루 종일 피곤함 몸을 이끌고 다녔던 중구로서는 꿀과도 같은 단잠이 박살이 나다못해 산산조각이 나버려 있는대로 짜증이 치밀기 시작했다. 씨팔. 저 개새끼가. 중구는 벽 한쪽에 장식처럼 놓여져 있는 아이언을 집어들었다. 문을 부실듯 열고 나가 당장에라도 옆집 문을 부술듯 두들겨댔다.


이내 곧 안에서 초췌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쇠고리를 걸어놓고 겨우 반뼘만큼만 문을 열고 음침한 얼굴을 내밀뿐이었다. 중구는 우선 아이언을 오른손으로 집어 보이지 않도록 하고 잠깐 얘기좀 합시다. 하고 문 열기를 권했다. 남자는 아니나 다를까 저번처럼 그저 미안하오. 하면 되는 줄 알고 영혼없는 사과를 던졌지만 중구는 코웃음을 쳐댔다. 하, 나 이 씨발. 이보쇼. 내가 여기 이사온게 삼주째요. 삼주 내내 한번도 안거르고 뭐하자는거요? 다음주에도 또 지랄하시려고? 닥치고 문. 열어. 


남자는 안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문을 도로 닫으려 했다. 간발의 차로 밑애 제 신발을 끼운 중구와 눈이 마주치고 중구의 손이 문을 잡았다. 어허. 이러면 쓰나. 사람이 얘기좀 하자는데. 마치 마술의 어떤 트릭처럼 문걸이가 뜯겨져 나가고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걸쇠가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었다. 활짝 열려진 문 밖으로 보이는 중구는 비틀린 미소를 지었고, 손에는 아이언이 들려져 있었다. 그것을 홰홰 돌려 제 어깨에 걸친 중구가 신발도 벗지 않은채로 성큼 걸어들어오자 남자는 저도 모르게 물러나며 기함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구는 안으로 들어서며 아주 당연하게 아이언을 휘둘렀다. 남자의 머리 바로 위로 서늘한 바람이 지나고 남자는 벽에 붙어 떨어댔다. 밑으로 축축하게 젖는것이 찌린내를 풍겼다. 찍소리라도 내봐. 어디. 다음은 댁 머리통이우. 집안은 정말 눈뜨고 봐줄수 없을정도로 더러웠다. 씨팔 어쩐지 옆집이 이러니 우리집까지 벌레가 꼬이지. 이게 집이요? 우리지 씨발. 발에 채이는 쓰레기를 걷어차며 주방 안쪽으로 들어갔을땐 점점이 떨어진 핏자국이 중구의 시선을 따라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앙상한 발목. 그 위를 뱀이 기어가듯 기괴한 곡선을 그린 핏줄기.


싱크대에 상체만 엎드려 눕힌채 양 손은 선반에 쇠사슬로 묶여있는 남자가 있었다. 살갗과 함께 찢어진 옷들이 피로 얼룩져있었고, 그 원인은 분명 그의 얼굴 바로 옆에 꽂혀있는 식칼일 것이었다. 너덜너덜한 상의, 아니 누더기만 걸친채로 치부를 훤히 드러내고 있는 그 남자는 이미 기절해 있었다. 가까이 가니 척 보기에도 이미 머리를 여러차례 싱크대에 찧이고 무언가로 얻어맞아 터진곳이 한두군데가 아니었고 엉덩이 밑으로는 여전히 피가 계곡물줄기마냥 흐르고 있었다. 하, 나 이 더러운 새끼.. 다시 현관으로 갔을때 이미 그 남자는 도망가고 없었다. 중구는 욕을 짓껄이다가, 이대로는 사람 죽였단 덤태기나 딱 쓰기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몸을 움직였다. 얼기설기 감아만 놓은 쇠사슬을 풀자 남자가 그대로 미끄러지려는것을 용케 잡아 올렸다. 이름도 몰라 신분증도 없어 깨어나지도 않아, 중구는 미칠지경이었다. 이대로는 병원에 데려가봤자 접수도 못할것이 뻔할 뻔자였다. 씨발씨발 욕을 짓껄이면서도 중구는 재개 손을 놀렸다.



* 회사에서 돌아왔을때 청은 방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정확히는 엉덩이를 질질 끌며 기어가닌다는 표현이 맞았지만. 청은 중구를, 중구는 청을 서로 멍청히 쳐다보고만 있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중구였다. 너 이름이 뭐냐? 청은 대답하지 않는다. 중구는 청이 일어서거나 말하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그동안 벙어리라서 비명한번 안지른거라는 가설을 중구는 확신했다. 하지만 중구가 집을 나서 회사를 갈때면 청은 멀쩡하게 두 다리로 서서 집안을 활보했고, 말 역시 못하지 않았다.


정청. 받아. 막 돌아온 중구가 청에게 던진건 아이스크림이었다. 바닥에 깔린 러그 위에 앉아 벽에 기대있던 청은 화들짝 놀라 그것을 받고는 의아하게 쳐다봤다. 더워서 사왔으니 먹으라고. 싫으면 내놔. 날름 봉지를 뜯는 청을 보며 중구는 흥, 콧김을 뿜었다. 청은 처음부터 중구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기색은 없었으므로 중구는 한시름 덜긴 했다. 말은 안해도 펜과 종이를 쥐어주면 묻는말에 곧장 잘 대답하곤 했으나, 청은 유독 그 때 그 남자에 대해 말하길 꺼려했다.

꽤 늙은 아저씨였는데. 뭐..아버지냐? 청은 묵묵부답이다.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며 아예 다른쪽으로 시선을 돌려버리기까지 했다. 아니면 네 약점이라도 쥐었어, 그 놈이? 청은 고개를 저었다. 그와 관련된 질문중에서는 가장 처음으로 답한 것이다.

 중구는 외려 제가 놀라 펄쩍 뛴다. 근데도 가만히 당한거라고, 이렇게 따질 수 없는건 청이 앉은뱅이요 목소리도 못내는 불쌍함 남자기 때문이었다. 청은 더 이상 중구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게 둘이 산것도 벌써 보름이었다. 중구가 청을 붙들고 앉았다. 어이, 내가 원래 살기로 한 곳에 가게 됐거든? 어차피 임시로 머물렀던 집이니까... 여기 곧 내놓을건데. 어쩔거냐. 청은 뭘 묻냐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아마 지금까지의 행동으로 보건대 청은 당장 중구가 나가라고 해도 그렇게 했으면 했지 제 의견을 말하진 않을 것 같았다. 밖에서 지는 석양에 노랗게 달아오른 눈이 중구를 주시하고만 있다. 중구는 속이 터진다. 씨발, 어쩔거냐고! 청은 고개를 떨군다. 미약하게 고개를 젓는 모습을 보며 중구는 속이 시원하면서도 찝찝한 얼굴이다. 대답을 들었으니 됐다고 중구는 현관을 나서버렸다. 한시간. 두시간. 조용한 집에 시침만이 소란이다. 새벽별이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숨기를 백번쯤 반복했을때 중구는 집에 들어왔다. 덥게 내쉬는 입김에 알콜이 잔뜩 섞여 내려앉았다. 청은 그때까지도 자지 않고 있었다. 중구는 코웃음을 쳤다. 왜 아직도 안자냐. 너. 청은 고개를 젓는다. 너. 내가 같이 가자면 갈거냐,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왜? 이유를 물으면 돌아오는 답은 없다. 내가 혼자가면, 너 갈데는 있고? 청은 벽을 가리킨다. 옆집이다. 또 그 더러운 곳으로 들어간다고? 중구가 청을 데려오고나서 그 남자는 다음날 옆집에 잠깐 들렀을뿐, 그 뒤로는 보이지 않았다. 


중구는 머리를 싸맨다. 얼얼하게 올라오는 술기운이 머릿속을 휘몰아치고 그 중심에는 청. 정청. 두 글자가 웅크린듯 잠들어있다. 소파에 앉은 중구를 가만히 올려다보던 청이 다리사이로 파고들었다. 얼굴을 쓸어내리던 중구는 의아한 얼굴로 청을 바라보다가, 청이 제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묻자 놀라 머리통을 밀어냈다. 뭐, 하냐. 너? 청이 중구의 손을 잡아 뗐다. 여태껏 직접적으로 중구에게 손을 댄 적이 없었던 청인지라 중구는 다시금 얼굴을 파묻는 청을 말리지 못했다. 바지 위로 우물거리다 버클마저 풀고 말캉한 혀가 감싸자 중구의 입에서 억누른 신음이 간신히 흘러나왔다. 청의 멱살을 잡아 확 끌어올리자 먹은것도 적어 가벼운 몸이 속절없이 끌려온다. 금방이라도 물어뜯을듯 입술부터 집어삼킨 중구가 청을 바로 눕혔다. 휘몰아치던것이 곧 커다란 토네이도가 되어 온갖 잡념을 날려버렸다. 별이 다시 잠들고나서야, 중구는 상쾌함을 느꼈다.


* 중구는 결국 청을 끌고 새 오피스텔로 발을 들였다. 그리고 중구는 청이 걸어다닐 수 있다는 사실과, 또 여태 일부러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나넌 못헌다고는 안혔는디. 그의 말대로 중구가 제 멋대로 생각 한 것이지 속인 것은 아니었다. 어느 새 새 집을 제 집마냥 활보하고 다니는 청의 모습에 중구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기실 이쯤되면 그가 그동안 자신을 속였는가 속이지 않았는가는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새 집에 새 가구, 새 가족-과연 가족이라 칭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지만.-이 생겼으니 중구는 우선 새 가구부터 테스트 하기로 했다. 침대 위로 장정 두명이 배려없이 몸을 던져도 끽 소리 한번 나지 않는걸 보니 확실히 침대는 좋긴 좋은가보다며 청은 능청을 떨었고 중구는 확실히 써봐야 알지 섣불리 판단할게 아니라며 곧장 청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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