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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안들려.

[자성청] 하직(下直)

삼이사핥핥
2014. 10. 3. 23:32

[자성청] 하직(下直)




관(棺)이 내렸다.


깊은 가슴 안에 밧줄로 달아 내리듯.


주여


용납하옵소서.


머리맡에 성경을 얹어 주고


나는 옷자락에 흙을 받아


좌르르 下直했다.


-박목월 <하관> 中




 단단히 못질 된 나무관이 구덩이 아래로 내려졌다. 여러 장정들이 행여 관이 흐트러지기라도 할까, 땅에 확 처박히기라도 할까 조심하는 손들이 있었다. 여럿 사내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말없는 눈물에 이은 곡소리는 진정 부모라도 잃은 듯, 가족을 잃은 듯 가슴을 뜯어갈 듯 사무쳤다. 자성은 초점 없는 눈으로 구덩이에 눕혀지는 청의 관을 보았다. 울음소리도 저 세상 이야기인 듯 멀었고 그저 바닥보다 더 바닥으로 가라앉는 관을 따라 저도 그 안으로 빨려들어 갈 것 같은 느낌을 억누르는데 급급했다. 관 위로 흙이 한 삽, 두 삽 올려지는 동안에 무슨 생각을 했느냐 하면 자성은 대답할 수 없었다. 

 

 청의 호흡기를 뗀 것은 자신이었다. 청의 마지막 숨소리를 들은 것도 자신이었고, 엉망진창인 몸을 닦고 염을 한 것도, 마지막 가는 길, 보기 좋으라고 생전 안 해봤을 화장을 해준 것도 자신의 손이었다. 관 뚜껑을 제 손으로 닫았다. 그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가? 대답할 수 없었다. 차마 관을 내리는 것만은, 그 위로 흙을 덮어 봉분을 올리는 것만은 할 수 없었다.


 마치 제가 그 안에 묻히는 것 같아서. 그 위로 덮히는 흙이 저를 눌러 내리고 숨통을 틀어막 는 것 같아서. 정말 그 안에는 청이 있는가? 묻혀지는건 자신이 아닐까.



 어느새 집이었다. 아직까지도 옷을 벗고 있지 않아 정장의 자켓 위로는 아직 산의 먼지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자성은 천천히 옷을 벗었다. 자켓을 벗어 걸어놓고 넥타이를 푸르고, 셔츠를 푸르기 전에 시계를…


 시계를….


 “청이 형님.”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부르자 단어를 마저 뱉기도 전에 목이 메었다. 손 안에 무겁게 잡히는 금속을 쥐고 자성은 버거운 숨을 고르지 못해 가슴을 쥐어 뜯을 듯 잡았다. 시계 서랍장 위에 놓여진 지구본은 청이 상해에서 사다준 것이었다. 수납함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시계는 전부 청이 준 것이었고, 그 옆의 넥타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숨이 막힐 것 같아 방을 빠져 나왔지만 다를 것은 없었다. 벽에 걸린 시계가, 식탁 위에 놓여진 해괴한 모양의 소스통이, 거실 한가운데 놓여진 소파가, 장식장에 자리한 술들이, 전부 그것들은 청이 제게 준 것이었다. 자성은 힘없이 무너졌다. 아직도 꽉 쥔 손에는 그가 마지막에마저 남겨준 시계가 쥐어져 있었다. 눈물이 왈칵 흘러내렸다. 시계를 꽉 쥔 채로, 답답한 가슴을 어떻게든 하고싶어 몸을 웅크리고 자성은 모든걸 쏟아냈다. 눈물샘이 말라 나오지 않을 때까지 숨이 쉬어지지 않을때까지 자성은 딱 청이 그리운 만큼만 울었다.



*



 2012.11.19.

 청의 49재였다. 다른 부하들이 하겠다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고 제가 나선 자성은 청의 집에 들어섰다. 청의 옷가지를 정리하던 중 옷장 서랍 안쪽에 무언가 걸리는게 있었다. 손을 깊이 뻗어 넣어 그것을 잡아 꺼내자 언젠가 제가 청에게 선물했던 구두였다. 여수에서 살 때, 명색이 오야가 항상 다 닳은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게 영 보기 싫어 모은 돈으로 장만해줬던 것이다. 서울에 올라오면서부터 새 구두를 신고 다니기에 그런가보다, 했더니 신발장도 아니고 옷장에, 혹여 습기라도 먹을까 신문지까지 꽁꽁 구겨 넣어 감싸서 그 닳고 낡아빠진 구두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가장 밑칸 서랍에는 이미 바래진 기억 속에 지나가듯 준 것들이 곱게 정리되어 있었다. 한 번도 쓰지 않은 생필품, 또 피 얼룩이 지워지지 않은 넥타이. 찢어지고 헤진 옷까지 전부.


 형님. 청이 형. …당신이란 사람은.


 비어버린줄로만 알았던, 다 털어버린줄로만 알았던 아픔이 다시 심장을 가르고, 그새 수척하게 패인 볼가를 타고 내린 눈물이 후드득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직(下直)했다.







#

하얀언니가 준 썰로 씀. 쓰고보니 별로 안 슬픈거같기도 :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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