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이사핥핥

[중청+동백] 기일.

Chupar 2014. 10. 2. 20:56



 청의 두 번째 기일이었다. 벌써 그렇게 되었다. 언제 다시 봄, 여름이 오고 가을, 겨울을 지나 다시 가을이 왔는지 중구는 이해할 수 없었다. 벌써 그렇게 된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이 그 생각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기억하지 못했는데 일어나자마자 그 생각이 든 자신을 비웃었다. 옆자리엔 익숙하지 않은 온기가 자리했고 그 남자의 몸 위로는 식지 않은 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었다. 어느 새 옆에서 뻗어온 손이 그의 눈가를 훔쳤다. 언제 흘렀는지도 모르는 눈물이 닦여 사라졌다. 악몽이라도 꿨느냐고 걱정스레 말하는 그에게 고개를 젓고 중구는 몸을 일으켰다. 덩달아 몸을 일으킨 사내가 중구의 손을 꼭 잡아왔다. 정청과 닮았으나 닮지 않았다. 짧게 깎은 머리에 표정을 숨길 줄 모르는 남자는 그만 가봐야겠다며 몸을 일으켰다. 다리 사이에서 흐르는 하얀 정액에 몸을 움츠리면서도 그는 중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중구는 동백의 저런부분이 정청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성격도 분위기도 다르지만 속은 누구보다 깊었고, 저렇게 모른척 해주기까지 하는 것은 청과 꼭 닮은 것이다. 그도 알 것이다. 청의 빈자리를 감당하지 못한 나머지 동백으로 하여금 청의 모습을 찾고있는 자신을 모를 리가 없었다.

 

 청의 무덤을 찾았다. 청이 좋아하는 술과 음식을 몇가지 가져가 그의 무덤 앞에 늘어놓고 중구는 무덤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어떻게 이 음식들을 다 챙겨 가져온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잊으려고 했다. 집 안 곳곳에 남겨진 청의 흔적들을 모두 치우고 죽은 것으로 가장해 골드문을 빠져나왔다. 집도 아예 이사를 했고 가구마저 바꿨지만 청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잊겠거니,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잊겠거니 갖은 노력을 했지만 그렇지 않다는걸 매 시간 매 초마다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니년이 좋아하는거 사왔잖냐. 안 처먹고 뭐해.”

 

 중구는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양주와는 다른 알싸함에 취해 눈이 풀릴때쯤 앞에 드리워진 인영에 중구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올렸다. 어쩌면 당신은 이렇게나 그대로일까. 머리도 올리지 않아 흐트러지고 넥타이도 느슨하게 매여진 정장을 입은 자신과 반대로 넥타이를 꽉 조이고, 소매의 단추는 잠그지도 않은채 청이 실실거리며 제 앞에 서 있었다. 눈 높이에 맞춰 쭈그려 앉은 청의 바지가 올라가 발목이 훤히 드러났다. 발목. 한 손에 쥐어 입 맞추고 싶었던 그 발목. 품에 가두고 싶었던 얇은 허리나 헤집고 싶었던 곱슬머리에 어느덧 내린 석양의 빛에 반사된 황금빛 눈동자. 중구는 손을 뻗었다.

 

 “정 청.”

 오야.

 “청아.”

 그려.

 “씨발, 왜 이제와?”

 기다렸냐.

 “그걸 말이라고 해?”


 청은 실실 웃었다. 뒷목을 끌어당겨 입을 진득하니 맞추고 혀를 섞자 익숙하게 제 혀를 감아오는 것이, 제 머리통을 끌어안고 매달리는 것이, 모두 정청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한참이나 혀를 섞고 나서도 둘은 떨어질 줄 몰랐다. 청을 제 무릎 위로 앉히고 끌어안은채로 중구는 청의 품에 얼굴을 묻었고 청은 중구를 다독였다. 씨발, 씨발, 왜 이제 왔어. 그랴. 다 내가 잘못혔다.

 

 

 자성은 멀리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재헌이 뒤에서 형님? 하고 물었지만 자성은 고개를 저으며 발길을 돌렸다. 멀리서 청의 무덤에 기대어 있는 사람은 둘이었다. 중구와, 동백. 알 법 했다.

 

 중구가 동백에게서 청을 찾으려 했을 때 동백은 중구를 사랑했다. 자성이 그것도 모르고 동백에게 경고를 하러 갔을 때 동백은 되려 그에게 물어왔다. 청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 뒤로 동백은 저렇게 중구가 정신을 반쯤 놓은 날이면 으레 청의 행세를 하곤 했다. 딱히 꾸미지 않아도 청의 말투를 따라하지 않아도 중구는 모르는 듯 했다. 아니면 모르는 척 하거나. 자성이 중구를 죽이지 않은 이유는 오직 청 때문이었다. 중구를 잘 부탁한다는, 그의 그 작은 당부가 아니었다면 분명 그도.

 

 간 사람은 벌써 없었고, 죽음은 온전히 산 사람의 몫이었다.